1928년 4월 24일에 열린 형평사 제6회 전국 정기대회 포스터.
포스터에 그려진 깃발에는 '형평'이라고 적혀 있으나 형평사의 공식 깃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제2회 대회에서 형평기를 들고 입장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제6회 대회에서 대회장 정면에 걸렸다고 하지만 아직 형평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제6회 대회는 독립운동에 관련된 고려혁명당 사건으로 형평사 간부들이 체포되어 조직상 타격을 받았으나 장지필, 조귀용이 무죄 판결로 출소한 직후에 개최되었다. 54개 분사 220명의 대의원이 참가한 이 전국대회에서 급진파가 부상하였다.
1926년경부터 형평운동의 실질적인 지도력을 장악한 개혁파인 서울파는 진주 출신의 강상호, 신현수 등을 배제하였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그때까지 자유연합제에서 중앙분권제로 조직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