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운동 70주년 기념식 기념사
오늘 이 뜻깊은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 참으로 고맙습니다.
특히 서정훈 진주시장님, 반차별국제운동 이사이신 임순만 교수님, 그리고 일본 오사까 부락해방연구소의 무라코시 쓰에오 이사장님, 감사합니다. 또한 형평운동에 관심을 갖으시고 이 자리에까지 와 주신 국내외 연구자 님들과, 이 기념식 뒤에 강연을 해 주실 김영대 선생님께도 주최측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바로 이곳 진주에서 70년 전에 있었던 <형평사> 창립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것은 광복 이후 처음 열리는 <형평사> 창립 기념식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70년전인 1923년 4월 24일에, 진주의 선각자들은 <형평사>를 결성하였습니다. 조선 5백년 동안, 아니 더 오랫동안 인간 이하의 혹독한 차별을 겪어 온 이른바 '백정'들의 인간 해방을 위하여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형평사>는 진주의 테두리를 벗어나 삽시간에 전국적인 조직으로 자라났으며, 갖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13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활동하였습니다. <형평사>는 일제 강점 시기에 가장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활동한 사회운동 단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형평운동에 대해,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각도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형평운동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그 뜻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형평운동은 우리 근대사상 최초의 인권운동이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어제 열렸던 국제학술회의에서도 여러 분께서 강조하셨듯이, 형평운동은 인권이라는 말부터가 낯설던 때에,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을 집단적인 운동으로 실현시키고자 했던 최초의 움직임이었습니다. 백정이라고 불리던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오늘의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차별 속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그들은 후미진 곳에서 따로 모여 살아야 했고, 갓 대신 패랭이를 써야 했으며, 어린아이한테도 존댓말을 써야 되는가 하면, 시집 갈 때 가마를 못 타는 것은 물론이고 죽어서도 상여에 실릴 수 없었던, 그런 차별을 받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수백 년간 계속되어 온 그러한 신분 차별의 두터운 벽을 허물고, 너와 내가 같은 사람이니 다함께 사람답게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과감히 내세우고 실천했던 형평사원들은, 밝은 세상을 열어 젖힌 선구자요 선각자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주목하는 두 번째 사실은, 형평운동이 누구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들 자신의 주체적인 자각과 노력에 의해서 이룩되었다는 점입니다. 차별을 받던 당사자들은 멸시와 천대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뜻있는 일반 시민들은 과감하게 인습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차별 받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형평사>를 창립하였던 강상호, 신현수, 이학찬, 장지필, 천석구 등 여러 선구자들 가운데는 이른바 백정 출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새 백정'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인간 평등의 숭고한 정신을 위해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의를 실현하기에 서슴치 않았으며, 일제의 혹독한 식민통치 아래에서 우리 민족의 진정한 단결을 추구했던, 선조들의 굳건한 신념과 용기에 다시금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여러분, 인류의 역사는 평등을 위해 노력해 온 발자취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가장 열렬히 추구해 온 게 바로 '평등'이었기 때문입니다. 70년 전 이곳 진주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그 평등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일어섰던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는 형평사원들이 용기 있게 부르짖은 그 정신에 의해 이룩되었고, 우리가 꿈꾸는 미래 또한 마땅히 그 정신에 의해 이룩되어 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른바 '백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신분으로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면, 구시대의 유물로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여러 모습의 다른 차별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사이, 힘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 이 지방 사람과 저 지방 사람 사이, 그리고 몸이 자유로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 등등에 존재하는 차별과 몰이해가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것은 사람답게 살려는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서 방황하게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저는 이 기념식이 광복 이후 처음 열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념식뿐만 아니라 어제 열렸던 학술회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뜻깊은 선조들의 노력이 그토록 오랫동안 파묻히게 된 데에는 여러 까닭이 있겠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선조의 정신을 계승하는 데 소홀했다는 반성도 해야 할 것입니다. 형평운동이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관심을 갖고 연구되어 왔다는 사실도, 그 점을 아프게 확인시켜 줍니다. 그런데 아울러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동안 형평정신의 적극적인 계승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억압과 차별이 있는 사회였다는 말씀도 되겠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지금 이 자리에도 계실 형평사원의 후손들께서는 그 점을 뼈저린 체험으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차별은 차별 받는 자만이 아니라 차별하는 당사자까지 사람답지 못하게 합니다. 차별과 억압, 사람에 대한 차가운 멸시와 독선이 있는 곳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있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단순히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또한, 선조들이 일깨워 주시고, 또 앞장 서 실천해 보이신 '평등'과 '박애'의 정신을 계승하여, 오늘과 내일의 우리 사회를 보다 인간답고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여기 모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보기 드문 개혁과 민주화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형평운동에 참여했던 선각자들이 보여준 평등과 박애의 사상을 바탕 삼을 때, 진정한 개혁과 민주화는 앞당겨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형평사>는 지금 없어도 형평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형평운동 70주년 기념사업회>는 지난해 6월 24일 창립되어 지금까지 여러 기념사업을 통해, 형평운동의 합당한 평가와 그 정신의 계승에 힘써왔습니다. 그 동안 800여명의 시민들이 회원이 되어 뜻과 힘을 모았으며, 언론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관심 또한 뜨거웠습니다. 그렇게 열렬한 반응에 저희 자신도 매우 놀랐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애초에 설정한 일 가운데 하나인 형평운동 기념탑이, 자리만 정해진 채 아직 건립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때까지 저희는 기념사업을 성실히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그러면서 회원 여러분과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저희 사업회는 형평정신을 오늘에 되살리어 북돋우는 데 적합한 조직체로 다시 출발할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드리고자 합니다. 그 조직체는, 형평운동을 연구하는 한편, 시민운동으로 확산시키는 두 가지 일을 아울러 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 모임이 인권 운동의 새 장을 열고, 우리의 삶을 보다 따뜻하고 복되게 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끊임없는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업을 위해 이제까지 애써 오신 본 사업회의 여러 회원과 이사들의 노고를 높이 치하합니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관계자 분들과,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를 빛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 이상으로 기념사에 갈음합니다. 고맙습니다.
1993.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