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정의] 1924년 진주에서 백정 청년들로 조직된 형평사의 하부 청년단체. [설립목적] 형평운동 노선을 둘러싼 갈등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진주 본사 임원들을 지원하는 한편 형평운동 진작과 진보적인 사회운동과 협력을 통한 백정들의 경제생활 향상과 사회적인 대우 개선 등을 목적으로 삼았다. [활동사항] 서울의 정위단과 진주형평청년회는 파벌 대립에 반발하는 젊은 활동가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들은 노장층에 비하여 비교적 급진적이며 진보적인 사상에 호의적인 입장이었으며, 진주노동공제회·진주청년회·진주기독교청년회 등과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지원과 연대를 모색하였다. 주요 활동은 사회과학 연구, 학술강연회·토론회 개최, 회원 상호간 부조, 잡지 발행을 통한 지식과 교양 연수 및 계급의식 고취 등이었다. 형평야학·형평강습소 운영은 회원과 형평사원 자제 교육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의의와 평가] 사상단체를 자임한 정위단은 서울 총본부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대중화에 실패한 반면 진주형평정년회는 각지 지사·분사의 형평청년운동을 선도하는 등 독자적인 활동영역을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또한 각지 청년형평운동을 발흥시킴으로써 마침내 1925년 12월 16일 전국적인 조직체인 형평청년연맹과 1928년 3월 경남형평청년연맹으로 귀결되었다. [참고문헌] • 형평운동70주년기념사업회, 『형평운동의 재인식』(솔, 1993) • 『진주시사』(진주시사편찬위원회, 1995) • 김중섭, 『형평운동 연구』-일제침략기 백정의 사회사-(민영사, 1994) • 김용기, 「형평운동의 발전」(『경상남도지』 상, 경상남도지편찬위원회, 1959) • 김중섭, 「1920년대 형평운동의 형성과정」:진주지역을 중심으로(『동방학지 』5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88) • 고숙화, 「일제하 형평사 연구」(이화여대박사학위논문, 19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