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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죽순처럼 솟구쳤던 '형평운동', 100주년 앞두고 나온 시집

형평운동기념사업회 0 134
1928년 "형평사 제6회 정기 전국대회"를 알리는 포스터.
▲  1928년 "형평사 제6회 정기 전국대회"를 알리는 포스터.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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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진주인가?"
 
윤한룡 실천문학 대표가 박구경(66) 시인의 새 시집 <형평사를 그리다>에 쓴 '표사(表辭)'에서 먼저 이렇게 물었다. 진주는 고려 때 '진주민란', 임진왜란 진주성싸움, 임술년 진주농민항쟁에 이어 형평(衡平)운동까지 민중항쟁의 고장이다.
 
백정(白丁) 신분 해방을 부르짖었던 '형평운동'은 100년 전에 시작돼 2023년이면 100주년을 맞이한다.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강상호·신현수·천석구 등 지식인들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형평사'를 결성했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이곤정)과 진주시, 형평문학선양사업회가 '형평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형평사'를 그린 시집이 나왔다.
 
"대나무밭의 죽순들처럼 오롯이 솟구쳐"
 
박구경 시인은 형평사를 제목으로 생산했던 연작시를 한데 묶어 시집으로 펴냈다. 자료를 찾고 증언을 듣고 머리를 싸매며 고민을 거듭한 흔적들이 '혈서'처럼 짙게 배 있는 시들이다.
 
"1923년 4월 25일 경상 땅 진주에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천명한 최초의 형평운동이 일어났더라 이는 형평사를 중심으로 기층 천민들의 계급과 지위 향상을 위하여 전개한 신분해방운동의 효시에 다름 아니었다."
 
시 "형평사-서시" 첫머리에서 먼저 설명해 놓았다. 형평사 출발을 설명한 박구경 시인은 "한날한시 한자리에 모여/한마음으로 봉기한 사건이자 혁명이었더라//내 나라 사람이 괄시하니/식민시대의 일본 놈들까지 모든 행정에서 차별을 자행하고//민적 앞에 붉은 점을 찍거나/도한(屠漢)으로 기재하였더라"고 표현했다.
 
또 시인은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입학 원서나 기관의 제출 서류마저/천시와 차별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라고 썼다. 백정의 아들딸들은 교육을 받는 데도 차별을 받았다.
 
지식인들이 이들에게 "참다운 인간의 지위를 돌려주자"고 언급했다. 박 시인은 "대나무밭의 죽순들처럼/오롯이 솟구쳐 오르기에 이르렀더라"고 했다.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사'는 전국 12개 지사, 67개 분사의 결성으로 퍼져나갔다. 박 시인은 "전국 50만 백정의 신분 차별 철폐를/천하에 천명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생각해 보라 우리의 피눈물을/골수 골수에 맺힌 설움을 씻고/한 많은 우리 선조들의/외로운 넋을 풀어드리고/우리,/자녀들의 새 세상을 위해/궐기하라! 궐기하라!/그리고 행동하라!"
 
형평운동의 정신은 이어 나갔다.
 
"백성도 백정도/한 민족의 후손이거니와 일원인데//더욱이 갑오개혁으로/신분제가 폐지되고/반상의 논리가 빛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는데//유독 백정에 대한 멸시와 천대는/질기게 남아 이어지고 있었더라."
 
"형평사의/인권운동이 태동되고 말았더라//전국 최초로 이 일을 주도해 나갔던/사람들이/바로 경상 땅 진주였으며/다름 아닌 진주의 사람들이었더라//인권 역사의 쾌거였으며/혁명의 붉은 불길이었더라"(시 "형평사-진주, 진주사람들" 일부).
 
또 시인은 소제목에 "백정도 사람이다"거나 "백정 각시 타기", "봉래교회", "기생 산홍", "비봉산" 등을 붙여 시를 썼다.
 
"백정들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위선이며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인들끼리 차별하고 탄압하는 것은 결국 일본의 식민 통치를 돕는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은 저울처럼 평등하다"고 했던 진주사람 강상호(백촌, 1887~1957) 선생의 외침도 시집에 담겨 있다.
 
"명실상부한 양반 가문의 장손이/오래된 편견과 차별 앞에/두 눈을 부릅뜨게 되었더라//백정 놈들의 단체인 형평사 사장이 되어/스스로 백정의 길로 들어선 이가 있었으니/그가 바로/진주사람, 강상호였더라."
 
강상호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상황을 박 시인은 "취학의 개방과 인권 해방 계급 타파를 위하여/선봉에 섰던//그의 장례식은/그렇게 전국 축산기업조합장(葬)으로/9일장으로 치러졌다//진주시내에서 장지까지 이어진/사람들의 행렬이/남강 오백리 물길과도 같았더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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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구경 시집 <형평사를 그리다> 표지.
ⓒ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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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를 벗어난 역사의식의 강"
 
시집에는 시인이 쓴 연작시 "진료소가 있는 풍경"을 비롯한 다른 시들도 실려 있다.
 
구중서 문학평론가는 '기교를 벗어난 역사의식의 강'이라는 해설을 통해 "박구경 시인은 조선시대의 최하층 신분이었던 백정의 평등, 공평, 인권운동을 우리에게 들이민 것"이라며 "시의 예술성보다 주제에 방점을 두고 시를 창작하지 않았나 한다"고 평했다.
 
이은봉 시인은 시집 뒤에 실린 표사에서 "당대 사회의 최하층 계급이었던 백정의 신분 해방을 실천적으로 획득하려 한 궐기했던 형평사운동의 공동체 정신이 연작시에 여실하게 반영돼 있다"며 "이는 인내천 정신에 곧바로 닿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왜 진주인가'라고 물었던 윤한룡 대표는 "한국 민족사에서 보기 드문 민중들의 항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던 지조의 고장"이라며 "이런 높고 맑고 향기로운 역사의 얼을 품은 고장에 깃들인 시 정신과 시인의 소명은 남다를 것"이라고 했다.
 
박구경 시인은 1998년 제1회 전국공무원문예대전에서 시 '진료소가 있는 풍경'이 당선되어 장관상을 받았고, 이후 시집 <진료소가 있는 풍경>,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국수를 닮은 이야기>, <외딴 저 집은 둥글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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