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주에는 진주대첩기념광장 조성 사업이 한창이다. 진주성 촉석문 앞 2만5000㎡에 달하는 넓은 부지는 일명 장어거리로 알려진 곳이다.
진주시가 광장 건립에 나선 것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되새기는 공간이 없다는 여론에 따른 것으로, 진주대첩의 역사성 제고와 호국충절 진주의 얼을 되살리고 첨단산업 문화도시로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2007년부터 추진된 이 사업에는 보상비 600억, 시설비 380억 총 98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며, 2016년도 연말까지 착공해서 2018년 하반기에 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란다.
우선 약 10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업 주체인 진주시가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문화체육관광부)나 경상남도 예산 지원이 꼭 필요하다.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는 장어거리가 없어진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언제부턴가 진주성 앞 장어거리는 진주의 명소로 자리잡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 사업으로 사라질 지도 모르는 것이 또 있다. 진주정신의 근거의 하나인 형평운동기념탑이 쫓겨날 운명이다. 진주시에서 형평탑 이전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논리는 광장의 기본 컨셉트가 ‘비움’의 광장이란다. 그래야 진주성이 잘 보이고 남강유등축제나 개천예술제, 진주대첩제 등 대규모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장소도 마련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현재의 진주성 공간이나 시설로도 그런 행사를 치루기에는 충분하다. 새로운 시의 랜드마크를 조성하여 눈에 띄는 민선 시장의 업적을 쌓기 위한 이 사업에 ‘비움’이라는 컨셉트가 특정 상징물이 들어가야 한다는 여러 단체의 주장을 무마시키기 위한 명분용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형평운동기념탑은 지난 1996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추어 무려 1500여 명의 시민들의 성금으로 이곳(현 진주문화원 옆)에 세워졌다. 꼭 20년 전의 일이다. 원래 형평사 창립 축하식이 열렸던 옛 진주극장(현 J-CITY) 앞에 세우려 했지만 부지가 협소하고 지가도 비싸 지금의 자리로 변경된 것이었다. 비록 외성이긴 하지만 수백년 동안 진주성 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백정들의 한을 달래주는 의미도 있었다.
어떤 역사적 유물이나 유적은 원래 있었던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그것이 장소성이고 그 자체가 역사다. 지금의 형평탑은 성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백정들의 피맺힌 한이 서려있고, 그것을 달래고자 한 진주시민들의 거룩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사업을 구실로 형평탑을 진주성 밖으로 내치는 것은 백정들의 영혼을 차별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진주대첩기념광장이라는 이름에 형평탑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나는 여기에 왜 진주대첩기념광장인가라고 반문하고 싶다. 진주성을 상징하는 것은 진주대첩만이 아니다. 1862년 진주농민항쟁도 있고, 1895년 이후 전개된 항일의병투쟁도 있으며, 무엇보다 진주성에 터한 수많은 민초들의 삶이 있다. 진주대첩기념광장이라고 했을 때 흔히 임진년 전투만을 지칭하게 됨으로써 7만 군관민이 희생된 계사년 전투는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된다. 진주시의 캐릭터 논개도 그렇다.
좀 더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진정으로 기억해야할 것이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그 동안 우리는 영토확장이나 승전의 역사만을 강조해 온 측면이 있다. 수많은 외침을 받았던 약소민족의 보상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차별보다는 평등을, 나아가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을 내세워야 한다. 따라서 진주대첩기념광장이 아니라 진주역사(문화)광장이어야 한다.
거기에는 진주정신을 대표하는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이 상징물로 들어가야 한다. 진주성 전투, 진주농민항쟁, 형평운동을 모티브로 한 상징물을 배치하면 반침략-반봉건-평화와 인권이라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유일무이한 공간이 될 것이다. 형평탑의 ‘두 줄기의 나란한 기둥’은 영원히 평등과 자유의 정신을 높이 찬양하고, 다가올 미래는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그녀도, 그니도, 모두 ‘평등의 문’을 넘어 평등과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세계가 될 것”임을 상징하고 있다.
형평탑 이전을 두고 진주시청의 이전 요구에 형평운동기념사업회가 허락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사실과 전혀 다르다. 2년 전부터 사업회에서는 진주시청 관계자들과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대책 마련을 고심해 왔다.
형평탑 이전에 대한 우리 사업회의 공식 입장은 첫째가 그대로 존치하는 것이며, 만약 이전이 정말 불가피하다면 형평역사공원 조성을 조건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안이었다. 형평역사공원 예정 부지로 형평운동의 아버지 강상호 선생 묘역(새벼리 석류공원 주변)이 떠올랐지만 지주와의 토지보상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튼 형평탑의 단순한 이전은 절대 불가 입장이며, 그 대안으로 진주역사(문화)광장으로 바꾸어 진주정신을 대표하는 상징물의 하나로 존치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진주시가 진주대첩기념광장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과연 진주시민들의 의견 수렴과정이 충분했는가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진주시는 행정 절차를 준수했다고 강변하겠지만, 진주에서 알 만한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업계획에도 설계자문위원회를 구성․운영하겠다고 되어 있는 만큼 향후 실시설계 과정에 진주시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반영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형평탑 문제 해결에 진주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