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오마이뉴스] 시대를 앞섰지만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던 강상호 선생

형평운동기념사업회 0 77
진주 새벼리 언덕에 있는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 묘지.
  진주 새벼리 언덕에 있는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 묘지.
ⓒ 김종신

조선 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넉넉한 경제적인 여건을 배경으로 신학문을 접한 뒤 일찍부터 사회운동에 눈을 돌렸던 그다.

그는 1919년 3‧1만세운동 때 진주에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29명 중 한 사람으로, 대구교도소에서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천석꾼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백정의 신분해방(형평운동)에 앞장섰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식 때 상여 뒤로는 만장(輓章)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백촌 강상호(1887~1957) 선생 이야기다. 독립지사이자 시대를 앞선 사회운동가였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그의 삶을 다시 살려 쓴 책 <형평운동의 선도자 백촌 강상호>(진주문고 '펄북스' 펴냄)가 나왔다.

조규태 경상대 명예교수가 쓴 책이다. 조규태 교수는 강상호 선생에 대해 "한국 근대사의 중심에 있었으나 단 한 번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물"이라고 했다.

신식 학문을 익히고 젊은 시절부터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던 그는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스물한 살에, '국채보상운동 경남회'를 결성하고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부친(강재순)이 세운 민족 사학 사립 봉양학교(현 봉래초등학교)를 이어받아 20대 후반이었던 1915년부터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백촌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진주 지역 젊은이들을 규합해 독립을 외치다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남짓 복역한 후 가출옥했다.

이어 복역 후에도 그는 독립에 대한 염원으로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며 경남도청 이전 반대운동, 진주사회운동가 간친회 사건으로 수차례 체포되고 석방되었다.

백촌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백정의 신분을 철폐하고 차별을 없애기 위해 1923년 형평사를 조직하고 형평운동에 매진한 것이다.

조규태 교수는 "양반, 상놈의 법적인 차별은 사라졌으나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시대의 신분제는 살아있었고, 특히 최하층 계급이었던 백정에 대한 멸시와 억압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했다.

양반 집안 청년들의 폭력에 백정 청년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건을 만나 강상호는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 본래의 양심"이라 소리 높여 외치고 백정들의 인권과 존엄을 위해 온갖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형평사를 설립해 차별 철폐에 온 힘을 쏟았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내내 지역에서 기개를 잃지 않고 독립과 평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으나, 사료 부족과 좌익으로 오해받고 불우하고 궁핍하게 삶을 마감한 탓에 지금껏 단 한 번도 제대로 평가와 조명을 받지 못한 강상호의 삶을 제대로 다시 살려냈다.

"1923년 4월 25일, 우리나라 근대사 최초의 인권운동 일어난 날"

형평사의 창립 취지를 밝힌 주지(主旨)에는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 본래의 양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계급을 타파하며, 모욕적인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여 우리도 참사람이 되기를 기약함이 본사를 만든 취지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형평사 창립일인 1923년 4월 25일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최초의 인권운동이 일어난 날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였던 당시까지 여전히 차별받고 무시당했던 백정들의 인권과 존엄을 위해 형평사를 조직한 사람은 바로 독립지사 백촌 강상호였다"며 "형평사를 세우고 형평운동에 매진하기 전까지 그는 사회운동가이자 독립지사로 일제의 탄압을 견디며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4년 갑오개혁으로 제도적인 신분차별은 없어졌으나 관습은 여전해 일제강점기에도 백정은 호적조차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백정들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나라 잃은 설움을 떨쳐버리지도 못하고 옥살이가 끝나자마자 신분제의 폐단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강상호 선생은 신현수, 장지필 등 진주 지역의 인재들과 함께 '저울(衡)처럼 평등(平)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단체(社)인 '형평사'를 조직했다.

양반 지주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형평운동에 매진하는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새 백정'이라고 비난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조 교수는 소개했다.

형평사가 세워진 지 4개월 만에 경남뿐만 아니라 경북, 충남, 충북 등 지사가 설립되고 '도부', '백정'등으로 호적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없애달라는 '호적 정정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등 실질적인 백정 차별 철폐 운동의 성과를 내었다.

'형평사'는 1935년 '대동사'로 이름을 바꾸고 친일 이익단체로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조 교수는 "192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형평사는 백정 해방, 신분 차별 철폐를 위한 본 목적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횔동하는 단체로 변질되어 갔다"고 했다.

이어 "자연스레 강상호도 핵심 역할을 맡지 못하고 결국 1936년 이후 형평운동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 이후 강상호는 더는 사회활동에 나서지 않고 생업을 잇기 위해 농부로 살아갔다"고 덧붙였다.

<형평운동의 선도자 백촌 강상호>는 지금까지 제대로 기록하고 조명 받지 못한 그의 일생을 오랜 조사 작업을 통해 꼼꼼하게 완성시킨 책이다.

조 교수는 "도저히 깨질 것 같지 않는 신분제에 맞서 싸운 깨어 있는 선도자이자 독립을 염원했던 지사였던 백촌 강상호는 그냥 잊혀선 안 될 표상이다"고 했다.

장례식을 소개한 조 교수는 "수많은 진주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구 형평사원들은 하나같이 모두 삼베로 만든 두건을 쓰고 줄을 지어 운집하였는데 수를 헤어릴 수 없이 많았다"고 했다.

고인의 무덤은 새벼리에 있다. 조 교수는 "장례 행렬은 진주 남강교에서 새벼리까지 끝없이 이어졌다"며 "장례 행렬이 새벼리 입구에 거의 다다를 즈음 마침 지프차를 타고 새벼리를 지나가던 어느 육군 장성은 이 광경을 보고 지프차에서 내려 정중이 예를 갖추기도 했다"고 했다.

백촌의 묘소에는 한 동안 묘지명과 안내판이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독지가가 성금을 내 1999년 추모비가 세워졌고, 도로 옆에는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은 추천사에서 "형평운동을 주도한 단체의 이름을 저울(衡)처럼 평등(平)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단체(社)라는 형평사로 정한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형평운동은 모든 인간들의 사회적 평등을 추구한 평등 운동이다. 이 고귀한 운동의 중심인물이 백촌 강상호 선생이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백촌 강상호 선생은 백정 출신도 아니었다. 양반 지주의 아들로서 기득권을 버리고 인권운동에 앞장서서 새(新)백정이라는 욕설과 돌팔매질을 당하는 험한 길을 숙명처럼 받아들이셨다"고 했다.

조규태 교수는 경상대 교수회장, 국어사학회 회장, 배달말학회 회장을 지냈고, <번역하고 풀이한 훈민정음>, <국어교육 지역화의 실천방안> 등의 책을 펴냈으며, 진주문화연구소 이사,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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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문고 펄북스가 펴낸 책 <형평운동의 선도자 백촌 강상호> 표지.
ⓒ 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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