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의 이야기 "일월" 영화를 보고
가는 날이 장날일까...그날따라 날씨가 참 추웠다. 얼굴을 에이는 듯한 한파에 저녁도 먹는둥 마는둥 하며 행여나 늦을세라 달려간 영화상영장은 아담하지만 날씨탓인지 썰렁하기는 했다. 진주시민이 된지 얼마되지 않지만 그동안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해보기 위해서 발발거리고 쫓아다니며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자 하였었다. 문화예술회관에서 관람했던 백정의 이야기 "수무바다 흰고무래"는 그야말로 진짜 백정의 이야기였고 승리의 이야기였다고 한다면, 영화 "일월"은 자신의 뿌리가 되는 조상인 백정의 삶을 거부하려고 발버둥쳤던 패배한 백정의 이야기였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지나며 역사의 굵직한 한길을 헤쳐 나온 현대인이, 조상이 백정이었다는 이유로 현재의 삶이 망가지고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지금의 내가 가지는 우월감일지도 모르겠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이기에 영화가 제작된 그 당시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을 "일월"이었을 테고, "소나기"로 잘 알려진 황순원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것에서도 이미 큰 의의가 있었을 영화였을 것이다. 특히, 형평운동기념사업회의 새내기 회원인 나로서는 [형평운동]을 배워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이고, 그래서 형평운동에 대한 강의나 답사가 있을 때면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셈이다. 무식하니까 용감하다고 할까...
내년에는 형평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까지 형평운동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안고 이어오신 많은 분들에 비하면 한량없이 부족한 나지만, 내년에는 뭔가 형평운동을 현대에 맞게 계승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영화 "일월"의 한 장면을 되돌아 본다. 원조경제로 성장한 기업과 정경유착으로 탄탄해지는 그들만의 리그와 그 고리가 끊어져서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저질기업의 모습을.... 영화속에 나타난 6,70년대 천민자본주의의 태동이 눈에 거슬렸다..... 영화에서 나타난 백정의 모습보다도 비정상적인 국가경제 발전이라는 허울좋은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2022년 천민자본주의의 파렴치한 모습과 외면받는 노동의 모습이 천대받던 백정의 모습과 겹쳐져 보인다. 겨울 찬바람맞아 마음이 알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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