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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사
작성자 남간사
작성일 2009-02-13 (금) 12:59
ㆍ조회: 961      
형평운동의 탄생과 발전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역동적 과정을 겪어온 진주지역에서 백정 출신이 아닌 사회운동가들과 백정사회의 지도자들은 1923년 백정신분 해방을 위한 단체를 결성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통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되어온 어린이·소작인·여성 등에 대한 관심이 많은 진주 사회의 분위기에서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형평사 창립을 주도한 지도자들은 1923년 4월 24일 진주청년회관에서 발기대회를 열고 그 이튿날 창립대회를 가졌다. 형평사의 창립은 전국적으로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특히, 형평운동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백정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단적인 보기로서, 형평사 창립 20일 만인 5월 13일 진주에서 열린 창립축하식에는 전국에서 4백여 명의 백정들이 모였다. 역사상 최초로 일반인들에게 백정들의 해방을 알리는 대규모의 공식 행사가 열린 것이다.

백정 차별 철폐를 내건 형평운동형평사 지도부의 노력으로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어갔다. 처음에는 경남지방에서, 나중에는 호남과 영남, 중부지역에서 형평사 지부가 잇따라 조직되었다. 형평사진주에 본사를, 각 도에 지사, 각 군과 유명 마을에는 분사(分社)를 두는 전국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이러한 전국 조직은 형평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중심 틀이 되었다.

형평운동의 발전은 연도별 형평사 지·분사 수를 보여주는 다음 표를 통하여도 알 수 있다. 출발 첫해부터 조직체 수는 80개에 이르렀으며, 가장 활동이 활발했던 1930년 전후에는 그 수가 160개를 넘었다.


 

연도

 지사 분사 수

 1923

 80

 1924

 83

 1925

 99

 1926

 130

 1927

 150

 1928

 153

 1929

 162

 1930

 165

 1931

 166

 1932

 161

 1933

 146

 1934

 113

 1935

98




전국 조직의 확대와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하위 조직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보기로 전위 단체인 정위단을 비롯하여, 형평청년회·형평학우동맹·형평여성회 등이 각 지역에서 만들어졌고, 형평청년동맹과 같이 각 지역의 하위 단체를 잇는 중간 단체가 결성되었다. 이처럼 백정들의 열렬한 성원과 진보적인 지식인, 사회운동가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에 힘입어 전국운동으로 발전한 형평운동은 농민·노동자·청년·여성 등 여러 사회운동과 더불어 당시 사회운동계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형평운동의 발전은 조직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활동가 수나 활동 내용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형평사측에서는 전국 백정 출신의 인구를 추정하여 통상 40만 회원들이라고 하였지만, 실제 회원 수는 이에 훨씬 못 미치리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일제 경찰 기록도 1926년의 백정 수를 36,679명으로, 1928년의 형평사 사원 수를 9,688명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적극적인 활동가가 대단히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해마다 창립 기념일인 4월 24일 즈음에서 열린 정기대회에 참석한 대의원 수도 늘어나 1920년대 후반에는 3백여 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의 형평사는 전국 조직을 통해 많은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을 벌인 대표적인 단체였던 것이다.

형평운동이 전국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형평사 지도부의 중심 세력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특히, 창립 1년 뒤부터 시작된 본부를 진주에 두자는 진주파와 서울로 옮기자는 서울파의 파벌싸움이 벌어지면서 형평운동의 주도권은 중부지역 출신의 활동가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렇지만 진주형평운동의 발상지이자 초기 단계의 활동 중심지로서 세인들의 인식에 각인되어 형평운동은 곧 진주라는 등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형평운동은 1930년대 만주사변(1931)과 중일전쟁(1936)을 일으키는 일제의 군국화 와중에서 크게 위축되었다. 특히, 이데올로기적인 갈등 속에서 회원 간의 분열이 일어나고, 일제의 간섭과 억압 아래 형평사의 조직이 와해되고 활동이 정지된 지부가 늘어나면서 형평운동은 큰 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1935년에 형평사대동사(大同社)로 이름을 바꾸면서 인권운동의 본래 성격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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